top of page

잘못 배달된 소포

​이귤리체 / 아이아코스(LC)

   돌로 만들어진 바닥을 부드러운 천이 쓸고 지나가는 소리와 구두의 굽이 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점점 커지던 발소리는 이윽고 천맹성 와이번 라다만티스의 집무실 문 앞에서 멈추었다. 발소리의 주인은 노크 같은 예절은 알지 못한다는 듯 아무런 예고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여어 라다만-" 

 

   "시끄럽다."

 

   열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칠흑의 드레스. 검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소매를 장식하는 검은 레이스를 제외하면 간소한 장식의, 그럼에도 우아한 형태의 드레스였다. 다만 그것을 걸치고 있는 것이 천웅성 가루다 아이아코스였을 뿐.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자신의 집무실에 쳐들어온 아이아코스를 라다만티스는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과 동급인 삼거두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수하를 시켜 성 밖으로 내쫒아 버렸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한테 장난치러 올 시간에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신경 썼으면 한다만."

   "흥, 자잘한 건 나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러기 위해 있는 존재들이잖아."

 

   성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업무를 맡아서 처리하고 있는 라다만티스였지만 더 이상 아이아코스에게 뭐라 말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말해서 자신의 말을 들을 존재였다면 지금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 땡땡이치는 동료를 향한 기대를 접고나니 그제야 아이아코스가 걸치고 있는 드레스에 눈길이 닿았다.

   "그러고 보니 왠 옷이지. 꾸미는 취미 같은걸 없을 거라 생각했다만."

 

   "별거 아니야. 그저 내 방에 잘못 왔더군. 그래서 그냥. 옛 생각도 나고, 심심했기도 하고."

 

   그래서 입어봤다. 그렇게 말하며 아이아코스는 라다만티스의 책상 위에 방만하게 걸터앉았다. 책상 위에 놓인 잘 정리된 서류들이 옷자락에 밀리고 가려져 엉망이 되는 모습을 보고 당장 내려오라며 으르렁거리는 라다만티스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버리고는 오히려 그가 마시던 차까지 뺏어 마시더니, 분노에 찬 라다만티스의 모습을 흘끗 보고는 제멋대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이런 걸 입고 지냈었지. 어미라는 여자가 어디서 뭘 듣고 왔는지, 아이를 여자아이처럼 키우면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있다면서 말이야. 뭐 보다시피 그다지 소용은 없었던 거 같지만."

​ 그리 말하며 히죽히죽 웃는 아이아코스의 모습을 보며 라다만티스는 자신이 아이타코스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란 것을 깨달았다. 애당초 명투사에게 과거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이기에, 이 성의 그 누구도 서로의 과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들도 마성의 부름을 받기 전에는 각자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마 판도라님 또한....판도라님...?

   "그러고 보니 잘못 배달된 드레스라 하지 않았나? 이 성에서 그런 드레스를 입을 분이라면 판도라님 뿐일 텐데?"

    "아."

   자신이 누구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인지 눈치 챈 가루다가 도주하고, 라다만티스의 집무실에는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2021 세인트 세이야 여장합작

  • 합작 공개트윗으로 이동
bottom of page